[영화 후기] 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 2023)
약간의 내용 언급 있음.
2024년도 이제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올 한해가 끝나기 전 미처 다 보지못하고 미뤄두었던 영화들을 하나 둘 감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오늘 감상한 작품은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로, 워낙 좋은 평이 많았던 영화라서 꼭 봐야겠단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어쩌다보니 미루고 미루다 이제서야 감상하게 됐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에 대해 먼저 간단하게 살펴보자면, 활동을 시작한지 어느덧 30년을 넘긴 베테랑 감독이지만 연출한 영화 필모 전체 수가 10편이 채 되지 않는 대표적인 과작 감독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감독 본인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이번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준비하며, 다른 작품을 준비할 때보다 더 힘이 많이 들어갔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러닝타임이 2시간이 채 되지 않아서, 짧고 굵게 영화에 몰입하기엔 좋았던 것 같다. 최근 러닝타임이 길어지고 있는 영화판 추세를 고려해보면 굉장히 짧은 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소재 자체가 [듄]이나 [글래디에이터]처럼 장황하게 스토리를 늘기에 적합한 소재가 아니기도 하지만.
Zone?
이번에도 영화가 좋다는 평 외에는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영화를 감상했다. 그러다보니 영화 시작 전부터 자연스레 제목의 Zone이 과연 어느 공간을 의미하는 건지가 무엇보다도 제일 궁금했는데, 영화를 다 본 지금 내가 내린 Zone에 대한 생각은 이렇다.
영화를 보면 러닝타임 내내 끊임없는 사각형 공간으로 영화가 이루어져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한복판에 덜렁 위치한 벽에 둘러싸인 사각형 공간의 회스 사택. 사택 내에 있는 사각형의 욕조, 사택 내에 위치한 식물을 기르는 비닐 하우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대인을 소각하는 폭력적인 소각장까지 모두 하나같이 사각형의 구조물이다. 심지어 가장 인상적인 건 잠시 후 다룰 감독의 특이한 연출 때문에 상영관 자체도 그 Zone 중 하나로 보였다는 점이다. 즉, 아마도 제목에서 나오는 Zone은 특정한 장소를 묘사하기 보단 이 모든 공간들이 해당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만약 이 중에서 어느 한 곳을 제목에서 다루고 있는 Zone으로 굳이 선택해야한다면, 나는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있는 상영관을 주저없이 고르고 싶다.
이건 감독이 이번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개성있는 연출로 인한 것인데, 이 영화에서는 총 3번의 의도적인 단색 화면이 스크린에 등장한다. 그중 1번과 3번에 해당하는 영화 오프닝과 엔딩에서는 새까만 화면, 혹은 암전 상태가 묘사되고 2번에 해당하는 중간 단색 화면은 새빨간 화면이 나온다.
저 단색화면들과 돌비 영화관에서의 음산한 사운드때문인지는 몰라도, 단색화면이 어두운 상영관의 세 면의 벽과 어우러져서 어느 순간 지금 내가 상영관이 아니라 유대인을 태우는 소각장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소름끼치고 불쾌한 경험이었다. 영화 소재가 소재인만큼 이 어두운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아우슈비츠 소각장이 떠오르게 되는 신기한 연출이었다.
특히 단색화면에 변주를 줘서 중간에 붉은 화면이 스크린에 나올 땐, 그냥 소각장도 아니고 마치 소각 중인 소각장 내에 들어온 것 같아서 더 무서운 느낌을 받았다. 없던 폐소공포증까지 생길 지경이었는데 분명 이 부분은 감독이 의도적으로 연출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단색화면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폐쇄된 상영관이 제목에서 말하는 Zone에 가장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 때의 경험이 가장 생생했기 때문인 것 같다.
헨젤과 그레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면, 눈여겨 볼만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회스가 잠에 들지 못하는 딸에게 헨젤과 그레텔을 읽어주는 장면이 그 중 하나인데, 동화 내용에는 헨젤과 그레텔을 괴롭히던 마녀가 화로에 갇혀 산채로 타죽는다는 내용이 언급된다.
이 산채로 타 죽는 마녀가 회스 일가의 상황을 나타내는 비유라고 나는 생각했다.
사실 영화를 보다 보면 회스 일가가 정상적이지 않단 생각은 자연스레 계속하게 된다. 주변에서 유대인이 타죽고 그 재가 날아다니는 상황에 불쾌감을 느끼긴 커녕, 그 집을 떠나기 싫어하는 회스 부인. 심지어 유대인 가사도우미에게 '너같은건 남편에게 말하면 소각장에서 태우는건 일도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폭언과 심한 인격적 결함을 지닌 인물이다. 이처럼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은 아우슈비츠라는 특수한 환경에 둘러싸여서 형성된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이게 즉 산채로 타죽는 마녀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았다.
아내 뿐만이 아니다. 자녀들도 아우슈비츠에 있으면서 하나 둘 이상행동을 보인다. 예를 들면 동생을 비닐하우스에 가두는 형의 행동에서 유대인을 소각장에 우겨넣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고, 떠다니는 재로 인해 영화 내내 들려오는 가족들의 기침소리,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회스의 어린 딸, 그리고 심리적으로 불안한지 시종일관 시끄럽게 우는 막내 아기의 울음소리는 소각장으로 인해 붉게 타오르는 창 밖 밤 풍경과 함께 어우러져 생지옥처럼 보이기도 한다.
회스 부인의 어머니가 말도 없이 아우슈비츠를 떠난 것은 이 같은 환경이 정상인은 버틸 수 없는 환경임을 시사하는 씬이다.
마지막으로 성공에 눈이 먼 회스 중령은 누구보다도 출세욕이 강한 인물이다. 직접적인 장면으로 영화 내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아우슈비츠에서 타지로 전출을 당할뻔한 상황과 주변 동료들이 회스 중령에 대해 얘기하는 묘사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해 추정해보자면 아마도 독일군 기준에서도 도가 지나칠 정도로 유대인을 많이 죽이는 대학살을 작중 어느 시점 내에 범한 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군 내에서도 이미 유명인사가 된 것으로 보이며, 아우슈비츠에 파견되어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유대인을 학살했는지 영화 상영 내내 재로 덮힌 꽃들, 재로 인해 연일 기침을 해대는 가족들, 산더미처럼 쌓인 재를 청소하는 장면 등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얼마나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지는 영화 말미, 유대인 대량학살 작전의 이름이 본인의 이름을 딴 ‘회스 작전’이러고 명명된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부심을 느끼는 것으로 충분히 묘사가 되고 있다.
마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이 회스 중령조차 영화 말미에 원인을 알수없는 기침과 구토 증세를 보이는데 이 때 연출되는 사각형의 복도 구도가 앞서 설명한 Zone을 떠오르게 해서 참 아이러니하고 인상적인 연출이었다.
이렇게 살아있는 채로 병들어가는 회스 가족이 '헨젤과 그레텔 속 산 채로 타죽는 마녀'를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Night Vision
영화를 보고 난 지금까지도 그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장면이 하나 있는데, 바로 회스가 딸에게 헨젤과 그레텔 동화를 읽어줄 때마다 함께 나오는 Night Vision 장면이다. 감상 후기를 적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느낌으로만 의미를 이해해보려 노력하자면 처음 이 씬을 봤을 때 Night Vision으로 인해 흑백으로 보이는 이 화면이 마치 잿빛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동화를 읽어가는 동안 재가 되어가는 유대인들을 표현하고자 한 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봤다.
이런 류의 영화는 기분이 나쁘면 성공적으로 감독의 의도가 전달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식이 직접적이고 가학적인 방식으로 얻어진 불쾌함이 아니라, 은유적이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얻어진 것이라면 더욱 더.
작품 전반적으로 유대인을 사람으로도 취급하지 않는 무심함이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예를 들면, 새로운 구조의 화로를 브리핑하는 씬에서는 사람 400~500명을 로테이션으로 효율적으로 소사시킬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말을 너무 담담하게 지나치듯이 대사로 내보내는 장면에서 당시 유대인에 대한 취급이 어땠는지를 알 수 있었다.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인지 예전에 본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라는 작품이 오버랩되기도 했지만, 그 작품은 반전에 포커스가 맞추어져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그 부분에만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져있고, 영화 전반적으로 아우슈비츠라는 공간의 불쾌함이나 비극적인 점을 강조하는데에는 조금 부족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반면 이번 영화는 철저하게 아우슈비츠가 얼마나 기분 나쁜 곳이고, 인류 역사에서 손에 꼽는 최악의 행태였는지를 성공적으로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이 영화의 특별한 연출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OTT가 아닌 극장에서 보기를 추천하는 바다. 혹여라도 집에서 본다면 꼭 어두운 방안에서 보기를 추천한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