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정말 만족스럽게 관람한 영화지만 그와 별개로 영화 자체가 스트리퍼 애니(아노라)의 얘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인만큼,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다소 높은 수위의 영화니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관람할 경우 주의할 필요가 있는 영화다(...)
이 영화의 제목인 아노라는 주인공 애니의 본명이다. 영화 제목을 주인공 이름 석자로 떡 하니 만들어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집중적으로 아노라라는 인물을 통해서 메세지를 전달하는 영화였다.
영화 내에서 아노라 본인은 '아노라'라는 이름을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지, 다른 사람에게 본인을 소개할 때 늘 ‘애니’라는 애칭으로 본인을 소개한다. 이 애니라는 애칭은 단순히 애칭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비춰지는, 혹은 스스로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꾸며낸 아노라의 ‘페르소나’이기도 하다.
특히 스트리퍼라는 직업 특성 상 내면의 본모습보다는 외적인 페르소나의 모습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애니’라는 페르소나를 내세우는 아노라의 습성이 무의식적으로 강화되지 않았을까? 영화를 보며 생각했다.
이렇듯 겉치레 / 외관을 중요시하는 애니의 모습으로 인해 영화 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고도 볼 수 있다.
수려한 외모로 수많은 이성에게 매력적인 모습으로 비춰지는 페르소나 애니에게 있어, 부유층인 자카로프 가에 속하는 것이 애니라는 대외용 페르소나를 완성시키는 마지막 한 조각같은 요소였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이반을 유혹하고 결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영화 중반까지만 해도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 했으나 역시나 영화든 현실이든 인생은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이반이 좋아한 것은 아노라 그 자체가 아니라, 그저 애니의 화려한 외관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아노라는 본인 그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고 처절하도록 비참하게 파혼을 맞이하게 된다. 이 파혼 과정이 심각하게 그려지지만은 않아서 오히려 블랙코미디 영화로 보이는 게 또 이영화의 매력이었다.
물론 이 영화에 블랙코미디 요소가 섞여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장르를 순정 로맨스영화로 정의하고 싶은데 이는 순전히 등장인물인 ‘이고르’의 존재 덕분이다.
이고르는 화려한 용모나 언변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투박하고 순정적인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내 소동이 벌어지는 동안 아노라의 비참한 모습, 우스운 모습 등을 모두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애니’가 아니라 ‘아노라’를 봐주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들은 모두 이고르와 아노라의 대화 속에서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최애 대사는 역시
"난 '아노라'란 이름이 더 좋아"
이고르가 애니에게 덤덤하게 던지는 대사인데, 이 말을 통해 이고르라는 인물이 적어도 영화 내에서는 유일하게 페르소나가 아니라, 주인공의 본질인 아노라를 봐주는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는 대사였다.
아노라에게 강간범, 깡패 온갖 악담을 듣지만 동요하지 않고 모두 품어주는 순애남 이고르에게 영화 내내 찬사를 보내게 되는 작품이다.
그의 진심을 알았는지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아노라도 그에게 감사를 표하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만 그 방식이 본인, 정확히는 애니가 늘 해오던 섹슈얼한 방식이었고, 그 순간 아노라는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이 본인이 할 수 있는 감사 혹은 사랑의 표현이 그런 방식밖에 없는 것에 대한 자괴감인지, 아니면 늘 차별적인 시선을 받아오던 성산업 종사자인 본인에게 이런 순애를 보여주는 이고르 앞에서 터져나온 설움인지는 모르겠다.
영화를 다 감상하고 나면, 정말 아노라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희노애락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추가적으로 주인공인 미키 매디슨의 미모에 반하는 것은 덤...
정말 강력하게 추천하는 작품이다
Fin.
[영화 후기] 페라리 (Ferrari, 2023) - 1957 밀레밀리아와 위기의 페라리 (0) | 2025.01.18 |
---|---|
[영화 후기] 러브레터 (Love Letter, 1995) (0) | 2025.01.13 |
[영화 후기] 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 2023) (2) | 2024.12.29 |
[영화 후기] 청설 (Hear Me: Our Summer, 2024) (1) | 2024.11.24 |
[영화 후기] 글래디에이터2 (Gladiator II, 2024) (0) | 2024.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