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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기] 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s, 2023) - 누구에게나 완벽한 하루하루

맘대로 영화 리뷰

by 뿔문 2025. 1. 19.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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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영화는 빔 벤더스 감독, 야쿠쇼 코지 주연의 <퍼펙트 데이즈>

 

퍼펙트데이즈 포스터
퍼펙트데이즈 포스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꽤 많은 영화, 드라마를 봐왔다고 생각하는데 화장실 청소부라는 직업을 소재로 한 작품은 단언컨데 처음 보았다.

그만큼 흔히 영상화하지 않는 생소한 소재인데 영화가 제작된 배경을 알고나니 왜 감독이 화장실 청소부라고 하는, 영화 소재로서는 낯선

선택을 했는지가 이해가 됐다.

 

Tokyo toilet
The Tokyo Toilet

 

원래 이 영화는 도쿄도 시부야구의 17개 공공화장실을 쾌적하고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하는 ‘THE TOKYO TOILET 프로젝트’라고 하는

공공프로젝트의 일부였다고 한다. 굳이 비유하자면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공공화장실 홍보 UCC 콘테스트 출품작 같은 느낌이려나..?

아무튼 프로젝트를 위해 빔 벤더스 감독을 초청했고 가능하다면 작품까지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는데 감독이 흔쾌히 수락하며 성사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프로젝트성 작품임에도 이런 대단한 작품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대단하면서도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야쿠쇼 코지
야쿠쇼 코지.. 멋있어요... 팬이에요

 

야쿠쇼 코지

이 영화를 보고나서 어느 무엇보다도 주인공 역을 맡은 ‘야쿠쇼 코지’ 배우에게 푹 빠지게 됐다. 영화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이렇게 대단한 배우를 ‘퍼펙트 데이즈’ 이전까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는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영화를 보고 개인적으로 더 정보를 찾아보니, 일본에서는 한국의 송강호 배우와 같은 국민 배우 입지를 가진 배우이신 모양이다.

다른 필모 속 영화들을 찾아본 것은 아니지만, ‘퍼펙트 데이즈’ 단 한 작품 만으로 그런 칭호와 입지가 왜 붙었는지 충분히 납득이 갔다.

 

내가 직접 연기라는 행위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철저하게 관찰자 입장에서 보면, 가장 어려운 연기는 말이 아니라 비언어로만 감정을 전달하는 연기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청설’이라는 작품을 감상한 후 배우들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던 것도 바로 ‘청설’이라는 작품이 농인을 소재로 하여 말이 아닌 비언어적 연기를 많이 필요로 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퍼펙트데이즈’는 그런 면에서 참 대단한 작품이다. 주인공인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말이 없는 인물인데,

같이 근무하는 동료 청소부인 타카시도 너무 말 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자타공인 과묵한 인물이다. 그래서일까 조카가 등장하기 이전인 작품 초반부는 정말 히라야마가 말하는 장면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초반부 한정으로는 청설 버금가는 발화량이랄까(…)

 

영화 클라이맥스
영화의 클라이맥스... 또 누가 이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주인공의 희로애락을 모두 표현해내는 야쿠쇼 코지라는 배우의 연기력은 보는 사람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길을 잃은 아이를 도와주고나서 기뻐하는 모습, 점심시간 올려다 본 나뭇잎 사이 햇살을 보며 행복해하는 장면 등등 영환 내내 대사없이도

주인공의 감정을 충분히 따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에서 히라야마가 운전하며 차 안에서 다양한 표정으로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장면은 가히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명장면이었다. 보면서도 온갖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다.

이런 연기는 오직 야쿠쇼 코지만 할 수 있는 연기라고 생각한다.

 

Perfect?

영화의 제목부터가 Perfect Day”s”인데, 영화를 보다보면 뭐가 대체 그렇게 Perfect한 나날이라는 걸까하는 생각부터 들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인 히라야마는 누구보다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아침에 일어나 취미인 분재를 하거나 자기 전 독서를 하고, 마음에 드는 순간을 담기 위해 사진을 찍거나, 정기적으로 단골 술집에 가는 등 누구보다 루틴한 일상을 보내는 인물.

일반적인 인식처럼 Perfect days라고 할 정도로 강렬하고, 거대한 이벤트가 있는 나날은 아니지만 히라야마는 그런 그만의 루틴 속에서

감사함을 느끼고, 소소한 행복을 향유할 수 있는 인물이다.

 

화장실 청소부 일을 하면서도 이런 히라야마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늘 같은 시간, 같은 구역을 돌며 일을 해야하는 청소부 특성 상 하루하루가 반복된다는 느낌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지만 히라야마는 그렇지 않다. 반복적인 일이지만 화장실을 이용하는 손님과 쪽지로 미니게임을 하기도 하고, 화장실 사용법을 모르는 외국인을 도와주며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반복적인 일상 속 작은 변주들을 히라야마는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사람이다.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들을 찾아 누릴 줄 아는 이런 그의 성격이 그의 나날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다.

 

타카시
타카시씨 사람은 착한 것 같은데(...)

 

심지어 영화 속에서 주인공인 히라야마에게 늘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타카시가 좋아하는 여자와 데이트를 위해 무리해서 차를

빌려달라고 하는 바람에 하루 루틴도 망가지고 쓸데없는 지출이 발생하는 하루가 있는가하면, 타카시가 갑자기 청소부 일을 그만두게 되어 그의 일까지 소화하게 되는 바람에 밤늦은 시간까지 고된 일을 하는 짜증스러운 하루도 있다. 또 절연한 여동생을 만난 후, 슬프게 눈물을

쏟아내는 하루도 있다. 그럼에도 이 모든 나날을 완벽한 나날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 모든 순간이 오로지 그 순간에만 존재하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그것은 그것대로, 또 아무일없이 평범한 하루가 지나간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모두 그

순간에만 보낼 수 있는 시간이기에 모두가 소중하고 완벽하다고 영화가 말하는 듯하다.

 

니코

잔잔하고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던 히라야마의 일상, 그리고 영화 분위기 상으로도 큰 변곡점이 되는 시점은 바로 조카인 니코가 등장하는 순간이다. 니코의 등장이 히라야마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코모레비
색감이 참 예쁜 것 같다.

 

일상 속 변주. 니코 그 자체가 히라야마에겐 그런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히라야마 뿐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이 재미있는 것은 내일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히라야마처럼 아무리 정형화된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도 예상치 못한 작은 소용돌이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조카인 니코가 바로 그런 돌발상황을 대변하는 인물인 셈이다. 실제로 니코의 등장 이후, 히라야마의 일상엔 눈에 띄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긴다. 늘 하던 청소를 조카가 도와주기도 하고, 늘 혼자하던 출근 길을 조카와 함께 하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출근길에 ‘스포티파이’를 몰라 어느 가게인지 잘 모른다고 하는 히라야마와 니코의 세대차가 느껴지는 대화도 인간적이면서도 인상적이었다.

 

자전거
자전거 타는 장면의 이 소박한 느낌이 참 맘에 든다

 

아무튼 이런 변화들이 있기에 우리의 인생이 비로소 완벽해지는 거라고 영화 내내 거듭 메세지를 던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둘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대교를 건너는 씬에서 나오는 다음의 대사가 바로 그 모든 메세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다음에 함께 어딘가 놀러가자는 대화 중, 다음이 언제냐고 묻는 니코의 말에 히라야마가 한 대답인데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자는 메세지가 잘 담겨있는 대사여서 참 마음에 들었다.

그 외

영화 속 비중이 크진 않지만, 꽤 자주 등장하는 인물인 노숙자 할아버지. 정확히 그 인물을 빌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 노숙자 역시 매일 반복되는 히라야마의 일상 속 한 조각이자, 또 그 노숙자에게도 하루하루가 퍼펙트데이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올드팝을 좋아하는 히라야마라는 설정 덕에 영화 내내 올드 팝이 참 많이 나오는데, 역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등장한 곡이기 때문일까?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 가장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정말 좋은 노래니까 두번, 세번 들으시길..새해에 듣기에도 꽤 좋은 곡인 것 같다.

 

영화 자체가 기본적으로는 잔잔하고 누군가에게는 심심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천천히 음미할수록 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이자 2024년에 본 영화 중에서 누가 뭐래도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도 꼭 한번쯤은 찾아봤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다.

 

+ 나름 쿠키도 있는 영화인데, 나름 일본어 공부를 오래 했는데도 코모레비(木漏れ日)라는 단어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나뭇잎 사이에 비치는 햇빛'이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오직 해가 나뭇잎 사이에 내리 쬐는 그 순간에만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찰나인 셈이다.

영화를 단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이보다 좋은 단어는 없을 것 같다... 

코모레비 2
코모레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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