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같은 브랜드전기영화인 ‘하우스 오즈 구찌’를 보고나서 개인적으로는 해당 장르는 불호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영화 완성도나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인한 이슈는 아니었고, 오히려 익히 아는 내용들을 큰 반전없이 그대로 따라가는데에서 오는 루즈함?이라고 표현하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심지어 당시 '하우스 오브 구찌'는 장장 3시간에 육박하는 길이로 더 그런 단점이 내게 부각됐었다.
물론 그럼에도 의상이나, 고전적인 영상미, 레이디가가 연기력의 재확인 등등 좋은 요소들은 많았지만..
아무튼 사실 이번 페라리도 하우스 오브 구찌와 같은 장르의 영화라서 기대감은 별로 없었지만, 포드 &페라리를 떠올리며 의구심 반 기대 반을 가지고 지난 스페셜상영회를 다녀왔다.
기대치가 낮은 상태에서 관람을 해서인지는 몰라도 하우스 오브 구찌보다 단순 재미측면이나 상업성 측면에서는 훨씬 나은 작품이라는게 영화를 보고 나서 내 첫 감상이었다.
같은 브랜드 전기 장르의 영화임에도 '페라리' 라는 브랜드가 '구찌'에 비해 영화 소재로서 우위에 설 수 있는 건, 활용 폭이 넓은 그 장르적 다양성에 있다고 본다.
패라리를 소재로 함으로써 구찌를 영화화 할 때 다루었던 플롯에, 추가적으로 레이싱 영화라는 장르적 다양성도 같이 가져갈 수 있으니 제작자 입장에서도 관객입장에서도 훨씬 매력적인 브랜드 소재인 셈이다.
또 영화를 보면서 웃기다고 해야하나 공교롭던 부분이 하우스 오브 구찌에 출연했던 아담드라이버가 이번엔 메인 주인공 역을 맡았다는 점이다. 배우 본인이 전기영화를 매우 좋아하거나, 아니면 고급 브랜드에 어울리는 배우라는 소문이라도 돌고 있는 모양이다...
늘 장발의 아담 드라이버만 봐오다가 이번 영화에서 처음으로 짧은 머리의 아담 드라이버를 봤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번 페라리 역이 더 잘어울렸던 것 같다. 배우 마스크도 그렇고 그간 유지하던 장발 이미지보다는 머리를 짧게 치고 등장한 페라리 속 냉혹한 기업가 이미지에 더 어울렸다.
영화 속 엔초 페라리는 인간적으로는 참 별로지만, 한 기업의 보스로서는 그만한 사람이 없다고 느껴졌다. 가장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가정 내에서 최선의 역할은 다하지 못하지만, 페라리라는 당시 최고의 자동차 브랜드 기업을 이끌 정도로 사업적 수완이 있던 사람. 누구보다 투쟁심이 있고, 야심이 있던 사람. 그러면서도 보스와 가장 그 두 역할 사이에서 끊임없는 고민과 번뇌를 거듭하는 것이 잘 느껴져서 그런지 그 부분에서는 인간적인 면모가 많이 느껴졌던 것 같다.
영화 내내 가장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소재가 바로 '밀레밀리아'라고 하는 이탈리아를 횡단하는 초장거리 레이스 대회다. 밀레밀리아라는 말 자체가 이탈리아어로 1,000마일이라는 의미니까 이 대회가 얼마나 큰 규모의 대회인지는 대회명에서부터 엿볼 수 있다.
당시 다른 자동차 회사와의 경쟁으로 사세가 점점 위축되고 있던 페라리로서는 명운이 달려있는 대회였기 때문에, 엔초도 안전보다는 오로지 우승에만 눈이 멀어있었던 듯 하다. 물론 그 당시 시대상황만 놓고 봐도 지금보다는 안전불감이 심하던 시대이기도 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안전을 뒤로 하고 오로지 기술과 자동차의 성능에만 몰두했던 그 시기가 있었기에 자동차 관련 기술이 지금처럼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러한 안전 불감으로 인해 벌어졌던, 또한 페라리의 성공이 얼마나 수많은 희생 위에 이루어진 것인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건 '1957년 밀레밀리아 사건'이 영화 속에서 비중있게 다뤄진다.
이 때의 사건 이후, 페라리는 수많은 소송을 마주하게 됐고 역사가 깊던 밀레밀리아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당시로서도 큰 사고였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참고로 최근에는 이벤트 성으로 밀레밀리아 대회가 열리고 있는 듯하다.
아무튼 엔초 페라리의 인간적인 서사, 페라리라는 기업의 수난, 밀레밀리아 대회 등등 볼거리가 꽤 많은 영화로서 영화관에서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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