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제목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유추하건데, 김호연 작가도 실제 스페인에 머무르며 작품을 집필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연 돈키호테라는 이름을 한번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원작을 읽어보지 않았거나, 읽긴 했어도 긴 내용에 중도하차했던 사람은
있을지언정 돈키호테라는 이름을 단한번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엄연히 따지자면 나도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돈키호테가 허무맹랑한 짓을 벌이는 괴인이라는 단순 설정만이 성인이 된 지금 내 머리에 남아있을 뿐. 돈키호테가 정확히 어떤 내용이고, 결말이 어땠는지는 정말 말그대로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 외 기억나는 것이라곤, ‘당대의 기사도를 풍자한 작품’, ‘세계 최초의 근대소설’ 정도의 작품 외적인 정보들 뿐이랄까.
그래서 더욱 ‘나의 돈키호테’라는 작품명을 처음 접했을 때 김호연 작가는 이미 유명한 돈키호테라는 작품을 차용해서 무엇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인가가 물음으로 남았던 것 같다.
우선 단순히 소설 돈키호테처럼 무언가를 풍자하려는 목적으로 쓰인 소설은 아니라는 결론이다. 물론 극 중 문화계 블랙리스트라든지, 영화계의 불합리한 계약 관습같은 요소들이 언급되긴 하나 이는 소설의 주된 메세지는 아니고 이야기를 서술하며 다뤄진 부차적인 것으로 사료된다.
내가 받은 인상은 오히려 돈키호테에서 주인공 돈키호테의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목표지향적이고 전향적인 태도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극 중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결국 소설을 이루는 두 축은 솔이와 돈아저씨라는 두 명의 인물이다.
솔이는 서른이 되었지만, 일하던 방송일을 그만두고 고향인 대전에 내려와 먹고살 길을 걱정하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막막한 청년세대의 인물이다. 반면 돈아저씨는 민주화운동, 학원강사, 출판, 영화 시나리오 작가까지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하게 살았고, 또 불의에 대항하며 살아왔지만 결국 길을 잃고 방황하는 중년의 인물이다.
인생에서 잠시 길을 잃고 방황하는 두 인물을 통해서 이 작품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부딪혀 나가다보면 어떠한 형태로든 꿈을 이룰 수 있다라는 메세지를 던지는 것만 같다. 주인공 솔이가 주류 방송계는 떠났지만 유튜브라는 새로운 형태로 방송의 꿈을 이루고 어렸을 때부터 그리워했던 라만차클럽을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낸 것이 그 방증이다.
무엇보다 극중 돈아저씨로 불리우는 인물의 변화가 더 감명깊다. 돈아저씨는 자신이 돈아저씨라고 믿으며, 세상의 불의와 싸우며 인생을 살아왔다. 몇차례 실패를 겪고 영화를 통해 세상에 메세지를 던지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기도 하지만, 악덕 프로듀서를 만나 그 꿈마저 좌절하게 된다. 그 뒤 본인은 돈키호테가 아니라 그저 산초일 뿐이었다며 스스로를 자조하며 제주도로 도망가듯 떠나기도 하지만, 결국 솔이라는 인물의 영향을 받아 마지막엔 소설가라는 형태로 본인의 꿈을 이룬다.
두 인물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인생에서 언제 어떠한 형태로 각자의 꿈에 가까워질 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두 인물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태도는,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음 한구석에 희망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돈키호테라는 소설을 차용해서 작품을 집필한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소설 돈키호테의 결말이 새드엔딩인 것과는 별개로, 적어도 작품 전반적으로 비춰지는 돈키호테의 모습은 아무리 주변에서 괄시받아도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꿋꿋하게 행하는 인물이니 말이다.
요즘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려움이 만연한 속에 자조적이고 시니컬한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만 같아 개인적으로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런 사회 풍조 속에서 요즘에는 찾아보기 힘든 꿈이나 희망이라는 요소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을 개인적으로는 높게 평가한다. 이런 긍정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 앞으로 더더욱 늘어났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다.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영화나 책을 비롯한 모든 창작물이 그렇듯이, 창작물의 모든 면이 장점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의 돈키호테’의 경우, 유튜버라는 설정이 내게는 조금 아쉬운 점이라고 해야할까? 굳이 표현하자면 불호에 가까운 요소였다.
물론 김호연 작가가 한창 이 소설을 집필하던 당시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과 한창 새로운 직업으로서 본격적으로 유튜버라는 직업이 각광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2024년 이후에 이 소설을 접할 독자들에게는 벌써 그런 설정이 조금 촌스러운 설정이 되어버렸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견해다.
또한 솔직한 감상으로는 주인공 솔이의 감정선에도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여럿 존재했다. 초등학생 시절을 보낸 돈키호테 비디오에 대해 형성된 애착이 서른이 된 시점까지 유지될 수 있는 것인가하는 부분이 첫째 의문이고, 객관적으로 보면 단순 사람찾기에 불과한 컨텐츠에 소설 속 수 많은 구독자들이 그 정도로 열광하고 공감한다는 설정도 지금의 유튜브 생태계를 보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라고 느껴졌다.
여담으로 국내 영화를 보다보면 작품 내에서 스트리머나 유튜버를 어설프게 극 중에 끌고와서 극 분위기를 유치하거나 촌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많아, 굳이 왜 저런 불필요한 연출을 넣었나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도 그런 인상을 몇차례 받았기 때문에 그 부분이 내게는 아쉬운점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유튜버라는 직업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속성에 기대어 너무 단순하게 스토리를 끌어가려는 안이한 발상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유추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느끼는 일부의 아쉬운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좋은 문학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장편소설임에도 금새 다 읽을 정도로 흡입력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이런 긍정적인 메세지를 담은 작품들을 앞으로도 많이 만나볼 수 있길 바란다.
또한 매사에 부정적이고 포기가 빠른 사람들보다는, 터무니없지만 도전적인 돈키호테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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