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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기] 승부 (The match, 2025)

맘대로 영화 리뷰

by 뿔문 2025. 4. 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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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개봉한 영화 <승부>를 보고 왔다.

근래 국내 영화들이 극장에서 힘을 못쓰는 와중에 하염없이 미뤄지던 <승부>의 개봉 소식은 가뭄의 단비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승부 공식 포스터
승부 무심 포스터

 

사실 이병헌 배우가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오래전부터 개봉을 기다려왔다...ㅎㅎ

 

이병헌이 나오는 영화치고 기대에 부응 못하는 작품이 과연 몇 개나 될까? 개인적으로 이병헌 배우 자체를 좋아하는 이유도 크지만, 실제로도 “백두산”을 제외하면 실제 감상했던 이병헌 배우의 필모 대부분에 만족했던 기억이 있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 영화는 진작 촬영을 마무리했음에도 이병헌과 함께 투톱 주인공 중 한명인 유아인의 프로포폴 사건으로 인해 개봉이 기약없이 미뤄진지 2년 여가 흘러 드디어 개봉을 하게된 비운의 작품이다.

 

이창호 역의 유아인
이창호 역을 맡은 유아인

 

그래서인지 형식 상으로는 조훈현-이창호 투톱 주인공 체제이긴 하지만, 영화를 보면 조훈현 국수에 포커싱이 조금 더 맞춰져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게 과연 영화가 계획했던 원래 방향인지, 아니면 유아인 배우의 프로포폴 사건으로 인해 비중을 줄이다보니 발생한 현상인지는 명확하지는 않다.

개인적으로는 유아인 배우 개인의 이슈로 인해 영화 자체가 조훈현 국수 위주로 재편집되었다고 보는 편이다. 이창호 국수의 어린시절 역을 맡은 아역배우 김강훈의 비중이 영화의 1/4을 차지할 정도로 늘어난 것도 이와 관계가 없지 않다고 본다.

 

김강훈 아역
이창호 아역을 맡은 김강훈 아역배우

 

아무튼 이 영화는 이미 널리 알려졌듯이 바둑계 정상을 두고 승부를 벌이던 조훈현 국수와 이창호 국수 두 사제지간의 실화를 모티브로 담은 영화다.

 

참고로 국수(國手)란, 바둑 대회 중 하나인 국수 전의 우승자에게 붙는 호칭임과 동시에 한 국가에서 가장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을 높여 부르는 존칭이라고 한다.

바둑에 대해 깊게 알지 못하는 나도 조훈현 - 이창호 - 이세돌로 이어지는 한국 바둑계 정상 계보는 알고 있을 정도니까 영화의 주인공인 두 사람에게 국수라는 호칭이 붙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는 않다.

 

이병헌 - 조훈현
이병헌 - 조훈현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을 하나 꼽자면, 분명 바둑 영화임에도 포커스가 바둑 대국 그 자체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부분이 여느 스포츠 영화와 구분되는 <승부>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몇년 간 스포츠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들의 흥행성적은 아쉬움을 넘어 처참한 상황이었다. 물론 대부분 농구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긴 했지만, 어찌됐든 한국 영화 침체와 맞물린 스포츠 영화의 흥행부진은 <승부> 입장에서도 좋은 소식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바둑 그 자체에 중점을 둔 단순 스포츠 영화가 아니라, 두 사제 간의 인간적인 면모와 서사에 중심을 두었다는 점은 <승부>가 다른 스포츠 영화와 달리 매력적인 영화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인 셈이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바둑 대국은 영화 내용을 전개하는 매개일 뿐이고, 영화 자체는 조훈현-이창호 두 사제지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간적인 고뇌와 사제지간의 연을 담고 있다.

 

플롯 자체는 굉장히 간단하다. 실화 기반이다보니 조금 더 편하게 얘기하자면, 국내 정점에 있던 국수 조훈현은 바둑에 기재가 있던 어린 이창호를 제자로 들이게되고 이후 시간이 흘러 제자인 이창호가 성장해 스승인 조훈현의 정상 자리를 두고 겨룬다는 이야기다. 플롯 자체는 단순하지만, 영화에서 느껴지는 인간 조훈현과 이창호의 고뇌와 갈등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영화에서는 제자를 자신의 집으로 거두어 스승이 직접 제자를 가르치는 일명 ‘내제자’라고 하는 지금은 보기 힘든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로 인해 모든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가족같이 지내던 두 사람의 승부가 끝나고 승자와 패자가 한 집으로 퇴근하는 복잡미묘한 상황. 심지어 패자가 스승인 조훈현 국수였으니 승자인 이창호 국수도 마음이 편치 않고, 패한 조훈현 국수도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받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국내 한 유명 평론가는 ‘좋은 영화는 아이러니를 잘 사용하는 영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번 영화 <승부>는 이 말에 잘 부합하는 작품이다. 물론 이게 각본이 아니라 실제 발생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런 소재를 차용하는 것도 영화의 몫이기 때문에 결국엔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내제자
한 지붕 두 바둑기사

 

한 지붕 아래 같이 사는 두개의 태양이라는 아이러니함으로 인해 늘 정상에 머물러 있다가 추락한 조훈현 국수의 인간적인 고뇌, 그리고 늘 스승의 그늘 아래에서 본인의 기풍을 찾기 위해 고민하던 이창호 국수의 인간적인 성장 등 다양한 서사가 파생된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내내 두 사람 간의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기기 위해 치열하게 승부를 벌이면서도 서로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스크린을 너머까지 느껴지는 것 같아 영화를 보는 내내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맥락에서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서로 승부를 거듭하며 불편한 상황이 연출되자 불가피하게 출가하는 이창호에게 조훈현 국수가 이창호 국수 특유의 기풍이 드러난 첫 대국이자 자신이 호되게 혼냈던 그 대국의 기보를 몰래 전해주는 장면이다. 비록 대국에 대해 복기하며 본인이 심하게 혼내긴 했지만, 그 기보를 오랜시간 고이 간직했다는 부분에서 하나뿐인 제자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느껴져서 좋았다.

 

모처럼 주변에 추천할만한 국내영화가 개봉한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좋은 국내영화가 많이 개봉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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