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에 대해 가장 많이 들은 표현 중 하나가 바로 '미친 영화'라는 표현이었다.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난 지금, 저 말 외에 이 영화를 더 잘 표현한 말은 없다는 데에 동의하게 됐다.
극찬하는 의미의 미친 영화라는 의미도 있지만, 후반부 연출을 보면 그냥 이 영화를 연출한 사람도 미친 것 같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나조차도 극장에서 마지막 피날레 무렵을 보며
‘와…미쳤다…진짜’
‘그래 어디까지 하나 보자..’
라는 말과 생각이 저절로 나왔으니까.
우선 기본적으로 영화를 엔딩까지 보고 나왔을 때, 호불호와 만족도를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내 대답은 망설임없이 “호” 그리고 “만족했음”이다. 이 영화는 특유의 기괴함은 차치하고서 참 잘 만든 영화다.
젊음&외모 지상주의
우선 메세지가 참 단순하고 명확하다. 잘 모르는 사람도 ‘아.. 이 감독은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고싶은 거구나..’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사실 정확히는 외모지상주의이기도 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서 오직 젊음만을 찬미하는 현 세태에 대한 비판이 더 정확한 메세지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비판하는 수준이 아니라 마지막 피날레 부분에서의 피를 흩뿌릴 때에는 ‘감독이 그동안 쌓인 울분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마치 “외모지상주의 진짜 싫다!!!!!!” 라고 절규하는 것 같은 인상까지 받았다 (…)
영화를 보신 분들은 내가 지금 무슨 느낌을 말하고자 하는지 단번에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
그 정도로 여러모로 당황스러운 장면이었다.
마지막 장면까지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악덕 엔터회사 사장) “여자는 50세가 되면 끝난다”
(악덕 엔터회사 사장) “예쁜 여자는 항상 웃어야 해”
(오디션 심사위원) “차라리 코에 가슴이 달린게 낫겠다”
혐오를 의인화한듯한 엔터 사장과 주변 인물들의 입을 빌려, 영화 내내 반복적으로 리플레이되는 저 세가지의 대사들이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 내린 외모와 젊음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잘 보여준다.
미친 연출
사실 신비한 약으로 회춘하는 컨셉 자체는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소재임에도, 소재 따위는 모두 초월하는 연출이 참 압권이다.
이런 놀라운 연출을 해낸 ‘코랄리 파르자’라는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된 감독인데,
그간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면 이번 <서브스턴스>가 본인 커리어에 있어 두번째 장편영화인 모양이다.
그 정도의 신예 감독이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경탄할 따름이다.
기본적으로 영화 전체가 떡밥 회수라고 해야할까, 영화 초반부에 가볍게 지나간 장면을 기가 막히게 활용하는 구성에는 도가 텄다.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위에서 언급한 “차라리 코에 가슴이 달린게 낫겠다” 라는 대사가 계속 반복되면서, 실제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의 코 부분에서 가슴이 떨어져내리는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리고 수미상관 엔딩도 참 인상적이었다. 영화가 시작하는 장면에서는 토마토 소스를 쏟은 엘리자베스의 명예의 거리에서 시작하고,
엔딩에선 엘리자베스가 명예의 거리 내 본인의 자리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며 피범벅이 되는 것으로 완벽하게 수미상관을 이룬다.
또 이 영화가 신기한 점은 영화 스케일이 큰 것 같은데도, 영화에서 등장한 장소들을 곰곰이 떠올려보면 엘리자베스가 거주하는 펜트하우스, 약을 수령하는 비밀공간, 그리고 에어로빅을 촬영하는 촬영 현장 외에는 크게 다른 장소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렇게 제한적인 장소들만 가지고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도 감독의 연출 능력 중 하나인 것 같다.
데미 무어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수확은, 배우 데미 무어의 재발견이 아닐까싶다.
데미 무어라는 배우의 대표 필모가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적어도 서브스턴스 이전까지의 나는 대답을 못했을 거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만큼 내게 데미 무어는 연기나 작품으로 승부하는 배우의 이미지는 아니었다.
데미 무어 본인조차도 한 인터뷰에서 밝히길 젊은 시절, 어느 제작자가 본인을 보며, “팝콘 여배우"라고 말했다고 고백했을 정도니까..
그런데 적어도 이번 <서브스턴스>에서의 데미 무어는 누가 뭐래도 대배우였다. 애초에 영화 시나리오부터 데미 무어가 바닥까지 망가질 수 밖에 없는 역할이었고, 이는 영화계에서 잔뼈 굵은 베테랑 배우로서도 또 한 명의 여성으로서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본인이 가진 연기 틀을 부수고 새로운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 어려운 도전을 해낸 데미 무어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래도 이번 <서브스턴스>를 통해 본인 커리어 처음으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했으니, 그녀의 노력이 모두에게 인정을 받은 것만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Remember, You are one”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Remember, You are one” 이라는 대사다.
영화 전체 내용을 관통하는 대사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 의미를 넘어서
젊은 시절의 모습이나, 나이가 든 모습이나 모두 너라는 것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 같아서 오묘한 느낌이 드는 대사다.
일단 확실한 건 연말에 올해 본 영화들을 되돌아본다면, 무조건 내 Top 10에는 들어있을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극장에서 내려가기 전에 한번쯤 보시길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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