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후기를 남길 영화는 브래디 코베 감독의 <브루탈리스트>
감독은 낯설었지만, 영화 <피아니스트>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출연했던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주연을 맡아 개봉한다는 얘기를 듣고 기대를 하고 있던 작품이었다.
* 배우의 필모그래피때문에 영화에서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맡은 라즐로 토스 역이 부다페스트 출신이라고 했을 때, 일부러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이 연상되게 설정을 그렇게 한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러닝타임
아무튼 개봉을 앞두고 보고싶다는 생각은 계속 하긴 했지만, 브루탈리스트는 보기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극장에 들어가야만 했다.
압도적인 러닝타임 “215분”.
심지어 뮤지컬도 아닌데, 살다살다 영화관에서 인터미션까지 보게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굳이 계산하자면 하루의 1/8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길이의 러닝타임에 지레 겁을 먹고는 쉽사리 보러가야겠다는 생각을 못하다가, 정말 큰맘먹고 조조로 영화관에서 감상을 하고 왔다.
러닝타임이 아무래도 신경쓰이는 사람들을 위해 영화감상을 마친 시점에서 러닝타임에 대한 소감을 남기자면, 보통 영화 길이가 길어질수록 지루한 부분이 생기기 마련인데 신기하게도 이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전혀 그런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장르적으로도 흥행할만한 상업영화가 아님에도 긴 러닝타임이 단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 참 신기할 따름이다.
브루탈리즘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없이 <브루탈리스트>라는 제목만 딱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영어단어 Brutal을 먼저 떠올렸고 그러다보니 레버넌트 혹은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들과 비슷한 결의 거친 영화일 것 같다고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알고보니 브루탈리스트라는 제목은 건축 사조인 브루탈리즘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 때의 브루탈은 ‘노출 콘크리트’를 의미하는 불어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요새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안도 다다오’가 이 브루탈리즘을 대표하는 건축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브루탈리스트>에서 등장하는 메인 건축물도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와 유사한 모습을 띄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봐도 정말 재밌게 감상을 했지만, 건축에 대해 조금 더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두,세배는 더 흥미롭게 즐길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도 살짝 남았다.
그래도 영화를 통해 이렇게 조금씩이나마 잘 모르는 분야의 토막 상식을 알아가는 재미도 어쩌면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영화에 대해서 얘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영화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 브루탈리즘을 추구하는 한 건축가의 삶을 그린 영화다.
그 시대에 모질게 핍박받던 재능많은 유대인인 주인공이, 인생을 지나오며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본인이 추구하는 건축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본인의 길을 걷는 모습이 영화를 보는 내내 큰 울림을 주었다.
고된 시련을 겪은 뒤, 결국 훌륭한 건축물을 남긴 라즐로 토스의 일생을 영화를 따라 함께 나누다보니, 극 엔딩부에서 조피아가 남긴 축사가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남들에게 아무리 삶을 유린당해도 중요한 것은 목적지이지, 과정이 아니다.”
비단 예술가에게만 통용되는 말은 아니고, 평범한 우리 삶 전반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며 느낀 전반적인 감상은 이렇고,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다양한 생각을 하게되는 영화였는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건축이라는 분야가 정말 내가 알던 것 이상으로 매력적인 분야라는 것이다.
살다보면 불변 혹은 영원에 근접하다고 할 수 있는 대상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적어도 건축물은 세월의 변화를 거슬러 불변에 가깝게 존재할 수 있는 창작물이라는 점이 참 매력적이다. 왜 건축가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예술혼을 불태워가며 세상에 본인들의 아이덴티티가 각인되어있는 작품들을 남기는데 혈안이 되어있는지, 어쩐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본인이 만든 창작물이 계속 세상에 남아, 시공간을 초월해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 일인지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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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영화 주제의식과 별개로, 사람이 수많은 고난과 풍파를 겪고 삶의 여유가 없어지면 얼마나 예민해지고 뒤틀리는지를 영화 후반부 라즐로 토스의 모습을 보며 새삼 깨달았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여유를 간직하고, 본인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창작물을 남기는 삶. 그런 삶도 꽤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가 이번 <브루탈리스트>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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