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최근 재개봉한 <500일의 썸머> 감상 후기를 끄적끄적 적어보려한다. 이미 개봉한 지 오래된 영화인만큼 내용에 대해서도 더 편하게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재개봉하는 영화들은 대중적으로도 어느정도 인기가 있는 작품들이라서 그런지, 영화관에서 보고 나면 대체로 늘 만족을 하고 돌아오는 편이다.
재개봉 영화에 대한 이 기대에서 벗어나지 않고, 어김없이 이번 <500일의 썸머>도 재밌게 감상을 하고 왔다.
영화는 원래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로맨스라는 장르를 좋아하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로맨스 장르에 대한 짧은 식견으로 바라보면 일반적으로 로맨스는 단맛과 쓴맛 크게 두 부류의 로맨스로 분류되는 것 같다. 편의상 단맛과 쓴맛으로 구분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 분류법을 적용하자면 <500일의 썸머>는 쓴맛에 해당하는 로맨스 작품이다.
영화 플롯 자체는 굉장히 간단하다. 연인인 듯 친구인 듯 미묘한 관계에 놓여 있는 남녀의 500일 간의 사랑이야기.
500일이라는 한정적인 기간이 제목에서 명시되어 있는 만큼 사실 조금만 눈썰미가 있었다면, 이 이야기의 끝이 쓴 맛이라는 걸 알 수 있었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자, 주요 관전 포인트는 여주인공인 썸머의 복잡한 감정이다. 영화 내내 이야기가 톰의 관점에서 서술되고는 있지만, 사실 이야기 자체는 썸머의 복잡한 감정 변화에 따라 진행이 된다.
실제로 500일의 썸머에 달린 감상평들을 보면, 썸머의 시선에서 바라본 버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적지 않게 보인다. 비단 영화 속 톰만이 아니라,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도 그만큼 영화 속 썸머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개봉한지 오래된 영화인만큼, 그런 썸머의 행동에 대한 갑론을박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걸로 보인다.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썸머가 순진한 톰의 마음을 이용했기 때문에 썸머가 나쁘다는 게 중론이지만, 흥미로운 시각도 존재했다. 톰의 행동이 썸머로 하여금 톰이 자신의 Only one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게끔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실제 영화를 보면, 썸머가 결혼하게 된 남자는 첫만남에서 썸머에게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인지를 물었다고 썸머가 말한다. 이 행위가 단순히 책 내용을 물었다는 의미를 넘어, 썸머의 관심사에 같이 관심을 가져주는 행위라고 해석한 의견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그 남자와 반대로 톰은 영화 내내 썸머의 취향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썸머가 영화 초반부터 좋아한다고 말한 링고스타를 구리다고 끝까지 평가절하하는 모습도 그렇고, 썸머가 초대한 파티에 들고 간 선물도 썸머가 좋아하는 취향의 선물이 아니라, 본인이 관심이 있던 건축 관련 서적인 것도 그랬다. 어떻게 보면 이별을 고할 정도로 큰 이유들은 아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런 사소한 부분들이 모여 이 사람이 결혼상대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을 법한 사례들이다.
그래도 비록 연인이라고 명료하게 정의된 관계는 아니었지만, 영화를 보면 썸머도 톰을 좋아했던 건 확실해보인다. 다만 그렇다고 톰과 결혼이라는 엔딩을 맞이할 정도로 톰이 썸머의 Only one이 아니었을 뿐. 이런 관점으로 보면 톰과 썸머 어느 누구도 악인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우연으로 시작된 두사람의 사랑이 결국 인연이 아니었을 뿐.
회피형 성인애착유형
여러 감상평들과 별개로 개인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썸머의 행동 기저에 접근해봤다. 오래 전 어느 책에서인가 성인 애착유형이라는 개념에 대한 내용을 읽은 기억이 있다. 책 내용의 요점은 어느 대상과 애착관계를 형성할 때, 인간의 반응은 크게 안정형 / 불안형 / 회피형으로 나뉜다는 것이었다.
다른 유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이 중 회피형 애착 유형의 특성이 썸머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단초를 제시했다.
당시 읽은 책 내용에 따르면 회피형 애착 유형의 사람은 어느 대상과 애착관계를 형성하게 되면, 자기 방어적인 기제로서 그 사람과의 거리감을 유지하며 본인의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특성을 보인다고 한다. 물론 이런 행동이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그 대상과의 애착관계가 훼손되었을 때 받을 데미지로부터 본인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의내리는 것을 꺼리거나, 그 대상으로부터 거부당하는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해 먼저 이별을 고하는 등 특수한 행위들이 발현되기도 한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영화를 다시 보면, 썸머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들이 그저 기저에 깔려있는 회피형 애착유형의 특징이 발현된 것으로 보이는 측면도 있다. 실제로 톰과의 관계를 연인으로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고 연인들 간 누릴 수 있는 즐거움들을 Cherry picking 하는 특이한 행태도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행위의 시시비비를 떠나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또 이런 회피형 애착은 일반적으로 유년시절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하는데, 실제로 영화 초반부 얼핏 확인할 수 있는 썸머의 가정환경은 그렇게 화목한 가정환경은 아니었던 걸로 추정된다.
우연 or 운명
주인공의 심리를 파악하는 재미 외에도, 사랑에 대한 두 주인공의 시각이 바뀌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톰은 원래 사랑은 운명이라고 믿었던 사람이고, 썸머는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영화 결말에서 톰과 썸머는 공원 벤치에서 서로의 바뀐 연애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썸머는 그 때 톰이 맞았다며 본인은 운명같은 사람을 만났다고 고백하고, 반대로 톰은 썸머가 맞았다며 운명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톰의 말대로 마지막 장면에서 톰은 면접장에서 우연히 또 다른 사랑을 만난다.
이런 것을 보면 사랑이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됐을 때 그 만남을 운명이라고 생각할 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을 본인이 놓치지 않고 붙잡은 것으로 여길지 그 당사자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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